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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과 해군기지, 역사는 반복되는가(2)
[현지르포] 제주해군기지 반대하는 서귀포 강정마을을 가다
국방부는 1993년 12월 제156차 합동참모회의에서 제주해군기지 신규소요를 결정하고, 1997년 12월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2005년경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했으나 지역주민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러던 와중에 2007년 4월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회가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하고, 기자회견 후 유치건의서를 제주도에 제출했다.
제주도는 5월 여론조사 결과와 함께 ‘해군기지 강정동 유치결정’을 발표했지만, 여론조사 절차에 문제점이 많다는 점이 계속 제기됐다. 실제 그해 8월 주민투표 결과 반대의견이 94%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이었고, 11월 마을 총회에서는 해군기지 유치결의를 무효화하는 취지의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강력히 반대했지만 해군본부는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했다.
하지만 해군기지가 들어설 사업부지는 강정마을 해안은 2004년 제주도지사에 의해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해군은 2009년 9월 절대보전지역 지정의 해제를 요청했고, 김태환 당시 도지사는 12월 이 지역의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변경(축소)하고, 고시했다. 하지만 도의회에서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위 ‘날치기’가 강행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변화 없음” 평가 불구, 절대보전지역 변경 강행
문제는 요식행위를 위해 진행된 현장확인 등의 조사·검토였다. 2009년 9월 25일자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예정지 내 절대보전지역 변경(축소) 조사·검토서’에는 “현장조사 결과 본 지역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지정 당시(2004년 10월 27일)와 환경여건이 변화되지 않았음”이 기재됐다. 절대보전지역을 바꿀 어떤 명분도 없었음을 제주도 스스로 명기한 것이다.
강정마을은 사건 처분의 위법을 주장하며 2010년 1월 도지사를 상대로 제주지방법원에 무효확인 등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6·2지방선거에서 제주도와 강정마을, 해군 모두가 상생하는 ‘윈윈해법’을 공약으로 내세운 우근민 후보를 지지했다. 우 후보는 도지사에 당선됐다.
강정마을은 그해 8월 제주 전역을 대상으로 민주적이고 투명한 입지선정절차를 다시 진행해줄 것을 요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지선정이 되지 않을 경우 해군기지 건설을 수용하겠다는 ‘조건부 수용제안서’를 우 지사에게 전달했다. 우 지사는 이를 수용했지만 과거 해군기지 후보지였던 화순리와 위미리에 유치의사를 타진하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강정마을은 10월말 ‘제주도정의 조건이행불충분’을 내세워 ‘조건부 수용제안’의 백지화를 선언했지만 우 지사는 보름 뒤 건설사업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제주지방법원은 12월 소송을 제기한 해당 지역주민들에게 ‘원고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소 각하판결을 내렸다.
“가족이 깨졌다” 끝내 눈물 훔친 마을회장
신용인 제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10일 창조한국당과 강정마을회, 제주환경연합이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추진 경위 △절대보전지역 변경 처분의 경위 △강정마을 주민들의 소제기와 지방선거 이후의 상황변화 △법원의 판결과 해군의 공사 강행 등 사안의 개요와 함께 ‘사건관련 법령’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신 교수는 “사법부가 △실체적 하자 여부 △주민의경청취절차 이행 여부 △도의회 동의절차의 하자 여부 등과 관련해 판단을 회피한 채 해당 지역주민에게 원고적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 절대보전지역 관련 특별법과 도조례를 사문화(死文化)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재판부가 법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정치적인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라며 “일부 판사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독재정권 시절의 의식과 타성을 과감하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국민의 기본권보다 권력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도 “자식이 아버지를 쫓아내고, 칼을 들고 친척을 찾아가는 등 형제처럼 지내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 길에서 만나면 등을 돌린다”며 “마을에 있던 80여개의 친목단체들이 전부 깨졌다”고 말하고, “해군기지 건설과 상관없이 이렇게 분열된 마을주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나 되어 살겠느냐”며 눈물을 훔쳐 주변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제주도의회 ‘절대보전지역 해제 취소안’ 의결
결국 제주도의회는 지난달 15일 임시회를 열고 절대보전지역 해제 취소안을 의결시켰다. 새로운 결의가 과거의 결의를 뒤엎은 것. 과거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이 밀어붙인 절대보전지역 해제동의안을 새로운 의회가 바꾼 것이다. 또한 제주도 내 야4당은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앙정부와 해군의 공사 중단 약속과 함께 우 지사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와 경찰의 입장은 완고하다. 지난 6일 오전 8시경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던 양윤모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과 최성희 평화운동가 등 2명이 차량 밑에 들어가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저항하자 서귀포경찰서 소속 사복경찰들이 양 씨를 차량 밑에서 끌어내 경찰차에 태우는 과정에서 얼굴과 배를 가격하는 폭행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폭행논란이 일자 경찰은 “가벼운 몸싸움은 있었지만 폭행은 없었다”며 부인했지만, 마침 현장을 촬영하던 주민들의 카메라에는 폭행 장면이 담겨있었다. 고권일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공사업체와 주민들이 대치했고, 폭행사실에 분노한 주민들이 공사현장에 몰려가서 현장에 진입하려던 차량 6대를 그냥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앞서 제주 경찰은 지난해 12월 27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공사강행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성직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 주민들을 무차별 연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해군은 바로 그날 해군기지 공사를 시작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제2의 4·3’이라고 하는 이유다.









